선유봉의 또 다른 이름으로 양화도산(楊花渡山)이 있다. 본래 선유봉은 양천현(陽川縣)에 속해 있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천(陽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양화도산(楊花渡山)이 양천현(陽川縣) 읍치에서 16리(里)에 있다. 또 조선 현종(顯宗) 때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양천(陽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선유봉(仙遊峯)은 양천현(陽川縣) 읍치(邑治)에서 동쪽으로 16리 양화도(楊花渡)에 있다. 민간에서는 양화도산(楊花渡山)이라고 부르는데 작은 돌 봉우리가 강(江) 가운데 깎아 세운 듯 우뚝 솟아 있다. 명(明)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일찍이 이곳을 유람하다가 돌벼랑에 지주(砥柱) 두 자를 새겨 놓았다. 지주(砥柱) 는 중국(中國) 황하(黃河)의 중류에 있는 산으로 황하의 거센 물 흐름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기둥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중책을 맡거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나 역량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주지번(朱之蕃, ?~?)은 명나라 산동(山東) 임평(荏平) 출신으로 자가 원개(元介) 원승(元升)이고, 호는 난우(蘭?)이다. 만력(萬曆, 1573~1619) 연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고, 서화(書畵)에 뛰어났던 사람이다. 흔히 허난설헌(許蘭雪軒)으로 불리는 허균(許筠, 1569~1618)의 누이 허초희(許楚姬, 1563~1589)의 시를 중국에 소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조선 선조(宣祖) 39(1606)년에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는 한강을 유람했다는 기록이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보이고, <<여지도서>> <금천현>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누동천(樓洞川)이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 남쪽 박달리(博達里)에 있다. 곱고 깨끗한 모래와 흰 돌이 수십 리에 걸쳐 평평하게 펼쳐 있는데 아래로 양화진(楊花津)에 닿아 있다. 중국사신 주지번이 석주(石洲) 권필(權?)과 더불어 양화도를 유람할 때 누동천의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말하기를 맛이 동정(洞庭)의 물고기의 맛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대개 내의 형세가 평평하고 험한 여울과 큰 바위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 맛이 동정호(洞庭湖)의 물고기와 흡사한 것이다. 권필(權?, 1569~1612)은 조선 선조 때의 시인(詩人)으로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가 여장(汝章)이며, 호가 석주(石洲)이다. 정철(鄭澈, 1536~1593)의 문인으로 시재(詩才)가 뛰어났었다. 아깝게도 광해군(光海君) 때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왕의 노여움을 사 해남(海南)으로 귀양가던 도중 동대문(東大門) 밖에서 술을 폭음하고 죽었다. 저서로 <<석주집(石洲集)>>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