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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 있었던 선유봉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07 조회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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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아는 이야기지만 선유도에 선유봉이 있었다. 그런데 선유봉(仙遊峰)의 또 다른 이름은 굉이산이다. 흔히들 산의 형국이 고양이 같이 생겼다고 해서 굉이산이라고 한다고 이야기한다. 굉이는 고양이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처럼 생겼으니 굉이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 아니겠느냐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굉이산이란 이름이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실 산이 고양이처럼 생겼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설혹 그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게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쪽제비인지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는가? 

  선유봉은 본래 양천현(陽川縣)에 속했던 곳이다. 정선(鄭?, 1676~1759)이 양천현감(陽川縣監)으로 있으면서 그린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을 보면 선유봉이 들어 있다. 정선이 양천현감이 된 것은 조선 영조(英祖) 16(1740)년 음력으로 12월이고, 그만 둔 것은 영조 21(1745)년 음력으로 1월이다. 그러니 그 때까지는 선유봉이 양천에 속해 있었다고 보아야 된다.

  그런데 양천현의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 고양리(高陽里)이다. 고양리는 굉이말로 속칭되었다고 한다. 1966년에 한글학회가 간행한 <<한국지명총람>> <서울편>을 보면 지금은 강서구(江西區) 가양동(加陽洞)에 속한 고양동(高陽洞)을 굉이말로 소개하면서 ‘옛 고양리(高陽里)였던 마을'이고, ‘굉이말은 고양리의 속칭'이라고 하였다. 고양리가 굉이로 변이되고 거기에 마을을 뜻하는 말이 덧붙여져 굉이말이란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고양리에 양천현의 관아가 있었다면 고양리는 양천현을 대표하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고양리가 양천현을 대신하여 양천현에 속해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선유봉을 고양리산이라고 부르다가 급기야는 굉이산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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